영원한 구원 -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대한예수교침례회 2011.04.06 00:11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20:37~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성경을 보면서 제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구절 중의 하나가 누가복음 20장 37~38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위 의 말씀은, 주님께서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과의 변론중에 하신 말씀인데,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느니라"라는 말씀의 의미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속성과 연결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지금 쓰는 내용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 보셨을 겁니다.


학 교다닐 때 수학시간에 배운 것중에 무한대(∞)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오메가'라고 읽는 이 문자는 무한히 큰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무리 작은 수라도 무한대로 더하거나 곱하면, 무한대가 되고, 아무리 큰 수라도 무한대로 나누면 0 이됩니다.


유한한 것은 무한한 것 앞에서 그 크기, 혹은 존재자체까지 무의미해져 버리게 된다는 나름은 철학적인 의미가 담긴 내용으로 생각하며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과 같지 않아서, 순간이 영원이 되기도 하고, 수천년이 순간이 되기도 하다고 위의 베드로후서말씀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천년전 사람이든, 이천년전 사람이든, 혹은 미래에 태어날 사람들 조차 어쩌면 하나님 앞에서는, 바로 지금 내앞에서 있는 사람과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해보고, 그 반대로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 이야기 할때, 한번 구원받은 사람이 지옥에 갈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곤 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두가지의 관점을 확인 하는데, 그중에 하나는 영원한 세계에 속한 이야기를 하는 영원을 바라보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현실의 나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영원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그 내용은 우리가 눈으로 보거나 확인 할수 없는 영적인 것들로,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 많습니다. 영광, 하나님, 천국, 구원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영원한 것들은, 하나님께 속한것들이며, 실재로 우리가 지금 누리고 만지고 있지 않은 것들입니다. 다만 약속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영원한 세계에 속한 것들은, 변함이 없고, 안전하며, 완전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는 관점은, 그와는 다르게 흔들리고, 연약하며, 유혹을 받는 것들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 속한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은 불완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간에게 속한 믿음이나, 소망이나, 사랑조차, 흔들리고, 무너지며,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이 세가지 가치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구원의 의미를 생각했는데, 그것은, 구원이란, 불완전하며, 유한한 인간이, 완전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고, 그 옮겨짐을 잇는 다리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께 기대는 믿음과 그분께 가지는 소망과 그분을 향한 사랑을 통해 불완전하며, 유한한 내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됐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예수님께 이끄셨고, 예수님은 그중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6~39절, 요한복음 17장 12절)

그런가 하면,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면, 하나님앞에서 예수님도 그리하시겠다는 말씀 조차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3절)

자 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수 없고(누가복음 14장 27절),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기존의 교회에서 자신들의 교리적 관점으로 제공한 해석의 틀을 가지고 성경을 보지 않고, 순수하게 성경만을 읽는다면, 이런 말씀로 인해 구원은 과연 영원한 것인가, 불안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마련이고,

믿음이 파선된 사람들(디모데전서 1장 19절)과 예수님을 믿는 것을 지키는 것(요한계시록 14장 12절)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나면,

구원은 안전하게 아니라는 생각조차 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 는 이러한 성경의 두가지 관점으로 인해,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어서, 영원히 안전하다는 사람들(캘빈주의)과,  믿음을 지키라는 것은 성경의 명령이며, 믿음을 잃어버리는 자는 구원을 얻을 수없다는 사람들(알미니아누스주의)들의 두 관점이 모두 성경에 있음을 당연히 이해하게됐습니다.


저는 이 두 관점의 차이를 처음에 언급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속성을 통해 이해함으로,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지키며, 키워가야 할것이 무엇이며, 약속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신념을 얻게됐습니다.


영 원하신 하나님이 나를 자신에게 이끄시고,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신다면, 나의 영혼을 구원 하신다면, 그것은 지극히 작은 수에 무한대를 곱한 것처럼, 영원한 것이며, 그 반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자신에게 이끌지 않으시고,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지 않으신다면, 지극히 큰수를 무한대로 나눈 것처럼, 나는 없는 것(0)과 마찬가지가 될거라는 사실을 이해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과연 하나님의 백성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곤 내 삶을 뒤돌아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복음으로 이끄셨고, 지금 내가 서있는 이자리가 어떠한지,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지에 대한 믿음도 얻게 됐습니다.

누가 내게 설명해주고, 확인시켜주어서 내 구원을 확신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함께하고 이끌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내가 부인할 수 없기에, 내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영원한 관점에서 기록된 성경 구절,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의 안전함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그 러나, 바로 같은 그분이신 예수님께서, 자신께서도  힘겹게 걸어가신 그길을  우리와 같이 연약한 자들에게 따라오라 하시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사랑하는 자라 하시며, 결코 세상에서 자신을 부인하지 말라며 강권하십니다.  그의 뜻대로 순종하기를 , 자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듯이, 절대적인 사랑과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사람이 아니라는 선언과 함께 말입니다. (누가복음14:27)

이러한 말씀을 강조하면 율법주의자, 행위구원론자로 다시 비난을 듣게 되겠지만, 성경은 폐할 수 없으며, 구원의 안전함보다더 훨씬 많은 말씀을 하신 분은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런 말씀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시점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인 나의 관점에서 보기를 바라시며 하신 말씀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나의 구원이 진짜인지,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지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으며, 그분이 이끄시고 지키시면 나는 안전합니다.

나는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과 살아가며 그것을 확인하게되고 안전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 나는 지금 영원한 세계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을 엿보며 사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확신일 뿐입니다.

나는 현실을 살아가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며, 그분의 주권아래 나를 복종시키며 살아가야하며, 그렇게 하기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믿 음은 그냥 지켜지는게 결코 아닙니다. 구원의확신만을 강조하다보면, 믿음은 변하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있지만, 그러한 생각은 성경과 다르며, 구원의 영원한 속성과 믿음을 지켜야하는 인간의 속성을 이해하지 않을 경우 갖을 수있는

성경해석의 난점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1.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은 영원하다.

2. 그러나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나는 내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3. 하나님시점에서 구원은 영원한 것이지만, 인간의시점에서 내 믿음은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4. 나는 하나님의백성임을 확신함으로 위로받지만, 그렇다고 방심하지 않으며, 내 믿음을 스스로 확증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5. 내가 지키는 내 믿음은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 지킴은 하나님의 섭리안에 있는 것이고, 그것은 내가 지킨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를위해 기도하셨듯(누가복음 22장 32절)이 나를 위해 기도하시며 지키신 분의 은혜와 섭리 안에 있는 것이다.


저는 그래서, 구원의 영원함을 설명하는 성경구절을 읽든,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게 지키고, 순종하는 믿음만이 참 믿음이라는 성경말씀을 읽든, 모두 내게 해당하는 말씀으로, 위로와 경계를 받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내가 거듭났다기 보다, 하나님이 나를 낳으셨습니다. 내가 아는 그 날이 있습니다.

그동안 많이 아팠고, 병들었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점점 하나님의 것을 알아갑니다.

내 영혼은 인간의 시점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좁은 길 위에 있습니다.

즉 구원의 여정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구원을 받았냐는 질문은 거듭남의 시점과 완료를 강조하는 표현으로서 제대로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질문이라면, 난 영혼의 구원의 과정중에 있다라고 대답하겠지만, 당장 대침분들이 공격을 할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구원이 거듭남의 사건을 말하는게 아님은 성경에 명백하기에 설명도 해놓았습니다.


저 는 제가 믿는 내용이 오류가 있고없음을 떠나, 맞고 틀림을 떠나 아무런 모순 없이 믿고 있으며, 성경을 읽음에 막힘이 없습니다. 스스로 항상 노력하는 것은, 내가 믿고있는 것이 잘못됐을 수있다는 가정을 하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으려 많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막힘이 없습니다. 그 두 관점을 모두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속한 교단의 교리적 특성에 따라, 알미니아누스적이든, 캘빈적이든 선택하여 성경을 보는 분들 모두를 이해하고,  그런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의 믿음이 잘못되었다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구원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든, 믿음이 잃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든, 그들의 구원은 이런 것에 대한 생각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느냐, 그분의 백성이냐, 그분의 참으로 사랑하여 그분의 가신길을 걷는 사람이냐, 듣고 행하는 자냐, 우리가운데 소자를 대접하는 자인지에 대한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행동을 해야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러기위해 살아갈 거란 사실입니다.


저는 사람의 믿음은 그 하는 말이나 간증이 아니라, 오직 그 삶을 통해 보여질수있는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말로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그분의 가신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더 귀히 봅니다.


저는 천주교를 처음 믿었었고, 베드로라는 세례명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예수교침례회를 나오면서 그곳을 버렸고, 그곳에 있는 사람은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태석신부님같은 분을 봤습니다. 난 그분이 어떤 구원론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속죄의 복음 정도는 같다고 압니다. 그리고 그분이 예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운 것또한 압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분의 행위가 도덕적인 행위로 믿음과 상관없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지금의 저는 그분을 천국에서 볼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믿음이, 사람이 속한 교단과 그 생각의 어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 그분의 제자인 사람인가에 달린 일이라고 믿기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았다 안받았다는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하고, 교리를 나누어 서로를 부정하는 태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오직 성경은 적혀진 그대로 읽어야 하며, 읽혀진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제 믿음, 신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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