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문제가 되는 사람에게만 문제다? - 왜 무서운 논리인지에 대해

정리 2008/07/17 10:48
"문제는 문제삼는 사람에게만 문제다."
교회에서 생활하다보면 이런 말을 한번쯤을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하기 전에, 이말의 뜻을 먼저 생각해보겠습니다.

문제 [問題]
[명사]
1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
2 논쟁, 논의, 연구 따위의 대상이 되는 것.
3 해결하기 어렵거나 난처한 대상. 또는 그런 일.
4 귀찮은 일이나 말썽.
5 어떤 사물과 관련되는 일.
問題意識[문제의식] [명사]문제점을 찾아서 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태도.

우선 위에서 문제 라는  단어의 뜻중 " 문제?가 되는 문장^^에서 사용되는 문제는 아마 4번쯤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말은 교회생활중에서 어떤 잘못된점이라고 느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혹은 비판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의도로 사용되는 말로 여겨집니다.

 문제는 문제삼는 사람에게만 문제란 말의 무서운 점은

첫째는, 밑도 끝도 없이 모든 "문제의식"자체를 공격하는 생각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런 말을 통해, 문제의식을 갖는 모든 사람들을 공격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제의식"이란 그 전제가 가치평가입니다. 문제점을 알게되는 과정이죠.

사람은 가치평가를 하는 존재입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말이죠. 지옥 보다 천국이 좋다. 이것도 좋다 나쁘다의 가치평가가 들어갑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루종일, 평생 가치평가를 하고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휴지를 버리는 사람을 보면, 저러면 안될텐데, 아이의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저것도 안될텐데 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고, 내 면전앞에서 노상방뇨를 하거나 침을 뱉는 다면, 조금은 불쾌해지는게 사람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사람이니까, 교회는 그만큼 소중하니까 당연히 더 많은 가치평가를 하게됩니다.
관심은 결국 가치평가와 비례하게되죠.

교회에서 "가치평가", "판단"을 가장많이 하는 부서가 어디일까요?  그곳은 "전도인실"입니다.

그분들은 판단하고, 가치평가 하도록 의무지워진 분들입니다.(물론 현재의 시스템 내에서죠. 전 전도인들께서는 오직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하시고, 행정적인 일과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등은 신실하신 집사님들께 모두 맡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말씀묵상과 전도에만 전념하신다면, 날로 깊어져가는 말씀을 듣는 모두가 행복할 것같습니다.)
그분들은 성도의 한마디, 한가지 행동을 모두 가치평가하십니다. 그래서 이건 이래서는 안된다, 저건 이렇게 해야된다 생각하시고, 열정이 많으신 분일수록 더욱많이 가치평가를 하십니다.
그분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문제 삼는 분들입니다.
전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치평가는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됩니다.
가치평가를 통해, 선택을 하게 되죠. 제가 항상 마음에 담아두고 사는 몇가지 생각중 하나가 "사랑은 선택이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선택을 하는 것은 "구원"과도 직결되는 것이라서 저는 최고의 가치를 둡니다.

아마 "문제는 문제삼는 사람에게만 문제다"라는 말의 주요 의도는, 사소한 내용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는 말라는 것일 것입니다.
분란을 싫어하는 단체주의적 발상에서는 유용하겠지만, 그것은 올바른 생각과 개성까지 압살합니다.
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태우는 격이죠.
빈대는 분란이고, 초가삼간은 성도들 개개인의 생각과 창의, 문제의식입니다.

이 문장 자체가 "문제의식", "가치평가", "판단"을 담고 있는 것이죠.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문제의식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문제의식"자체를 공격하는 생각은 도저히 용납할수없습니다.

또한, 이런 말을 통해 교회안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치고자하는 모든 노력들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은 모든 것을 판단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판받지 않으려는 태도 이것이 무서운 점입니다.

저도 교회내에서 분란이 일어나고, 문제점이 드러나면, 괴롭습니다.
하지만, 병이 낫기 위한 고통이라면 감내해야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요?
(감기에 항암제를 쓰는, 즉 필요이상으로 문제점만 부각시키는 잘못이 있을 수 있음은 압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 형제의 편협함이 드러날 것이고 그것을 잡아줄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 잘못들을 권면해줌을 통해 교제가 되고, 그 개인의 신앙은 성장하는 것이니)
모든 비판하는 자세를 비난하는 것은 우습지않나요? 아니 무섭지 않나요?

저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을 문제삼기 전에, 자신을 먼저 문제삼고, 그리고나서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도와줘라"
 이게 성경의 정신이라 믿습니다.

남에 눈의 티끌을 보기전에 자신의 눈의 들보를 먼저 보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다른 사람의 눈의 티끌, 얼굴에 뭍은 콧물도 닦아 주는게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닥치고 따라와라, 생각은 내가 한다" 난 이런건 교회를 이끄는 자세도, 신앙의 자세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문제삼지 않으면 문제는 사라지는 것, 없는 것일까요?
물론 자신의 세계에서는 문제가 없겠죠. 자신은 이미 생각을 버렸으니.
생각을 할줄알고 생각이 있는 또다른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것도 생각이 없겠죠.
그리곤 그런 사람에게 또 말하겠죠.

"문제는 문제를 삼는 사람에게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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