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만) 순종하기

정리 2008/09/23 20:04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심으로 십자가에 순종하신 것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모범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바라는 모습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기뻐하실까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임을 생각해봐야 할 것같습니다.
순종은 그 사랑에 기반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참으로 나를 사랑하시기에 내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내게 고통이 될수도 있음에도, 그 고통조차 감수할 마음으로 순종을 하는 것은, 지금은 이해 할수없지만, 아니 살아서 이해 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아서든, 죽어서든 하나님께서 내게 좋게 하기 위하심임을 절대적으로 믿기에, 그분의 사랑을 확신하기에, 내가 그분을 사랑하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릴때 과연 그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은, 그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사랑의 힘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순종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릴 수 있습니다. 절대적 순종은 절대적 사랑과 신뢰에 기반합니다.
순종은 그러한 사랑과 신뢰의 표현입니다.


저는 성경적 순종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릴 수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교회 몇몇 극소수 목사님들의 결정이라면, 교회의 뜻이 되고, 그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드리고 순종하시는 분들도, 그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러시는 것을 알기에, "성경적 순종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릴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일까요?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의 글들에 많이 논의해 봤던 내용입니다.
이너맨님의 현철한 글에도 있듯이, 요한계시록에 예수님의 뜻에 불순종했던 여러 교회들만 상기해 보더라도 결코 교회의 뜻에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을 알수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교회의 뜻, 교회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지는 결코 같은 것일 수 없습니다. 교회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도록,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고, 함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일부 목사님의 결정들,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결정들이 교회의 뜻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간절함으로 전도인사회라는 특정한 문화속에 매몰되어, 일반성도들과 단절되어 성도들의 신음과 소망을 바라보지 못하는 분들께 사랑으로 "함께 교제해보자, 함께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자"고 해야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이유입니다.

"아직 전도가 되니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다, 그러니 문제가 있더라도 덮고 순종해야한다. 전도라는 대의를 위해서? 아직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촛대는 옮기지 않았다. 그러니 목사님들의 결정에 의문을 품지 말자?" 
이 말은 교회의 불순종이 극에 달하여 촛대를 옮기기 전까지 유효할 수있는 생각입니다. 즉, 촛대를 옮기기 전까지는 고치려는 노력보다 질서를 유지하는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밖에 이해 되기 어렵습니다.

 이것만큼 불순종의 말이 어디 있습니까? 촛대를 옮기기전에 회개하라라는 것이 예수님의 뜻아닌가요?

촛대가 옮겨진 많은 교회들이 그와 같았습니다. 과연 그와 같았습니다.

순종은 오직 하나님께만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질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약 회사의 사장이라면, 내 부하직원이 내 말을 듣기를 원할 것이고, 만약 합당한 이유없이 지시를 거부한다면 해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만약 군대의 상관이라면 내 부하가 내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그를 군법에 의해 처결할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목적을 가진 집단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체계적 질서가 있을 경우, 그 질서를 유지하기위한 권한 역시 주어지며, 그 집단은 그러한 질서와 규율에 의해 지탱이 됩니다.

그게 세상의 일반적인 집단입니다.

하지만 가정은 조금 다릅니다. 1차집단이라고 하던가요?
가정은 특정한 세상적 목적 보다는 애정과 신뢰의 관계가 더 중요하고, 이것은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목적입니다.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도 나와 나의 가정을 지키기 위함이고, 회사에 나가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개인의 행복추구, 자아실현, 성취 그 모든 것을 지탱하는 것도 어쩌면 가정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족"을 얻기 위해 첫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군대이기도 하지만, 그 종됨과 군사됨은, 세상의 그것보다 더 우월한 완전한 신뢰와 사랑에 기반합니다.

군대와 회사가 군법과 경제적 위치로 우리 개인을 조정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제대로된 군대와 제대로 된 회사는 법과 힘보다는 "신뢰"와 "애정"과 같은 가장 본질적인 관계 역시 두터운 곳입니다.
전우애를 이야기하고, 애사심을 이야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관의 명령에 죽는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의 명령에 참으로 목숨을 걸도록 하는 힘.
사장의 지시에 따르는 척하고, 대충 일을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처럼 책임감과 열정을 가지고 일에 미쳐살게 만드는 힘.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교회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순종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빈도수는 갈수록 높아져 가고, 이 카페가 생긴 이후에는, 교회의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목사님중에 한분께서, 지속적으로 교회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 하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닐 수있다라는 말씀까지 하고 계신 실정입니다.

그냥 비판하지 말고, 따라와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카페와 같이 교회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참 안타깝게도, 그분들은 교회에 대해 아쉬움이 있는 사람들은 "가라지"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비판없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이라도 따를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 것이 가능한  이유는, 내가 생각이 없고, 현실에 안주해서, 별로 원하는게 없어서가 아니라, 징계가 두렵고, 권위에 눌려서가 아니라,
교회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지금 잠시의 의혹을 이겨 낼수 있는 이유는 바로 , 그 믿음과 사랑입니다.

순종을 이야기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에 교회를 넣어버리는, 전혀 다른 것임에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대리자 인양, 선지자 흉내를 내는 거짓 선지자들처럼, 말하는 일부 전도인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대한 순종을 말하기 전에,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은 교회에 대한 성도들의 사랑과 믿음을 회복하는데 먼저 힘써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없이 행하며 순종을 말하기전에, 스스로들 말씀하시듯 자신들의 눈의 들보를 먼저 봐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말하듯, 하나님의 자녀들을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허물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과거엔 그랬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과거 교회는 나를 아들로 대해주었지만, 나도 어머니처럼 사랑했지만, 그래서 가정이었지만, 지금은 교회는 내가 직원이 되기를 원하며, 부하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운영은 투명하지 못하고, 성도들 개개인의 신앙과, 행복보다는 눈에 보이는 확장에 더욱 관심이 많으며, 진정한 의미의 전도(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와 하나님 나라의 성취 보다는, 눈에 보이는 성과와 교회의 외형에만 전력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아왔고, 애타게 생각해온 저는,  교회의 뜻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지키기에 너무 버거웠습니다.

나름대로 노력하고, 기도하는 일들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노력을 교회의 방향과 배치된다고 생각하시며, 경계하시는 것에 슬펐습니다.


지금은, 목사님들의 결정들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내 양심이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신다고 내 신앙이 말합니다. 난 반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함께 교제했고, 간절히 사랑했던 형제자매들이 내게 이단에 빠졌다고, 교만하다고, 거짓형제라고 저주하더도 슬퍼할 밖에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거절할수 없습니다.


지금은 밖에 있지만, 그 속에서 태어날, 그속에서 살아갈  많은 형제자매들을 기억하기에..그 기억이 날 붙잡습니다. 물리적으로 훼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않할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확신되는 그 것을 이야기 할 것입니다.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목사님들, 전도사님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현실과 타협하고, 그 타협한 결과물로 형제자매들을 인도해 간다면, 진정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죄를 짓게될 것이고, 참으로 많은 사람을, 구덩이로, 실족케하는 죄를 짓게 될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신앙을 이야기하면서 현실적 제약들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목사님들은 더욱 현실적임에 놀랐고 실망했습니다.

일제시대 신사참배가 그러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에 우상을 들여놓을때도 아마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적이다..라고, 하나님과 우상을 같이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 성전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갈 길, 자신들의 신앙을 굽히는게 아니라는, 자기합리화. 그렇게 배도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적을 믿지도 않았고, 현실적 대안과 "합리"라는 껍데기를 쓴 "타협"을 가지고 모든 결정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몇몇 형제자매들이 무리한 건축으로 실족하고 있음에도 눈을 감고, 교회에서 이익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형제자매들이 갖는 마음의 슬픔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현실적 이익, 합리적 결과....우리는 보통 그런것을 "현실과의 타협" 혹은 "세상과의 타협"이라고 말합니다.

그분들이 오직 성결한 교회, 오직 사랑과 애정만으로 무장하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 그 사랑의 힘으로, 자신의 모든것을 기쁘게 드려 세상을 이겨가는 교회를 꿈꾸지 않는 한, 교회는 현실적 타협속에 타락해 갈 것이고, 그 미래를 명백한 것입니다.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바뀔 것 같냐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그런다고 바뀔것 같냐고. 교회의 질서만 흐트러뜨리고, 교회를 깨는 것일뿐이라고, 바뀔 수는 없는것이라고.
저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저도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말해야 겠습니다. 바꾸는게 하나님 뜻이라 믿는다고. 그래서 난 그렇게 하겠다고. 그리고 다른 분들도 그리해야한다고 외치겠다고. 현실적인 모든 조건을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생각하겠다고.

순종에 대해서, 목사님.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이 오늘 하시는 그 설교가 만약 하나님의 참된 뜻이 아니라면, 목사님은 교회에 순종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위치에 교회를 놓았던 목사님은, 하나님의 권위로 하나님의 뜻을 그릇 전한, 거짓선지자의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현실적 타협, 합리적 고려... 목사님이 고민하고 결정한 그것이,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 된다면, 그 만큼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요? 목사님들을 따르는 형제자매들에게나, 목사님에게나 말입니다.

저도 제가 비판하는 비판, 제가 잘못되었다 말하는 그 이야기..과연 옳은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겠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하는 그것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확신이 부디 바른 것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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