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0. 18 성경잘읽기
정리 2008/02/26 18:10 말씀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보통 간증되고 이야기되는 부분은 "양"적인 부분인 것같다.
1독, 2독, 3독...등 다독..
다독이나 통독뿐 아닌 정독 역시 중요하지만 정독에 있어서 말씀묵상의 깊이는 사실
측정할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잘 이야기 되지 않는 것이리라...
물론 말씀으로 형제자매 앞에서 설할 기회가 있는 경우에는 그 깊이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겠지만...이것또한 그 아는 것과 말,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사람마다 다름을 생각하면
도저히 잴수없는 부분이 된다. 사소한 내용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니까..
어쨌든 보통, 다독, 통독의 장점은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성경을 봄을 통해 성경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성경의 부분적 내용을 전체의 뜻과 어울리게 읽을수 있는
즉, 앞뒤가 맞지않는 해석..ㅡㅡ;을 하는 우를 피할수 있는 기본 전제가 된다는 의미에서 처음 성경을 접하는 경우엔 오히려 정독보다는 다독, 통독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독으로 보통 4~5독을 한 경우라면 정독은 꼭 필요한 것같다.
구체적인 말씀의 의미를 새기는 것...성경연구라는 의미에서의 정독은 너무 중요한것.
뭐..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지만...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다른 부분의 그냥 두더라도 꼭 유의해야할 점에 한가지 이야기 하고 싶어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 전도집회나 일요말씀가운데 등에서 주로 많이 접하게 되는 말씀등,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익숙한 말씀들의 경우 오히려 그 해석에 있어서...
우리가운데 이야기되어지는 해당 말씀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 때문에..그 본래의 의미와 뜻을 보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을 여러번 느끼게 된다.
즉, 이해하기 쉽게 말씀한 경우나, 허용되는 의역, 가능한 영해등을 한 경우가
여러번 말씀을 통해 이야기된 경우, 그러한 해석만 접하고 거기서 생각을 멈춤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석이 정상적인 내용을 감추는 색안경이 되어버려 전체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이해가 되어버리는 경우다.
말이 복잡한데 예를 하나 들면 간단할것같다.
누가복음 23장 31절 말씀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위의 말씀의 경우는 푸른 나무는 유대인, 마른 나무는 이방인, 이라는 해석이
조금은 고정되어 있는데..
실제 말씀의 문맥을 앞뒤로 읽어보고 기존에 형성된 관념없이 읽어보면
푸른 나무는 예수님을, 마른 나무는 유대인을 포함한..보통 인간, 죄인들을 말하는
것을 알수있다.
물론 이게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고 다 아는 사실이고
어느 목사님께서 이야기 해주신것 같기도한데...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중에는...그랬었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예는 생각외로 여러곳 된다.
이런 경우는 생각외로 중요하다. 말씀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 혹 말씀을 전하시는 분외의
다른 경로를 통해 자신이 오해를 벗었을 경우 기존의 해석방법으로
말씀을 전하신 분에 대한 불신이나, 오해가 생길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알게 모르게 교제와 교회,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에 근거한 무조건적인
신뢰조차 상하게 한다.
하고싶은 말은....셩경말씀을 읽는데 있어서 영적인 의미, 상징의 개인적 해석등을
하기 앞서...그 해당 구절의 기본적인,, 문자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고..
그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성경자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구절을 처음 대하는 듯 접근하는 자세...겸손과 통한다고 생각하는데...그런 자세가
필요한 것같다 는것..
말씀을 읽는 것이 좋지 않은 의미에서 습관화 된 듯하고..심상한 일일행사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는 것은...그런 마음 자세의 부족이 아닐까.
그러한 말씀앞에 무릎꿇음없는 말그대로 생각없는 태도에서...무슨 지혜를 깨달을수있을까..하는 반성을 해봤다.
1독, 2독, 3독...등 다독..
다독이나 통독뿐 아닌 정독 역시 중요하지만 정독에 있어서 말씀묵상의 깊이는 사실
측정할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잘 이야기 되지 않는 것이리라...
물론 말씀으로 형제자매 앞에서 설할 기회가 있는 경우에는 그 깊이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겠지만...이것또한 그 아는 것과 말,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사람마다 다름을 생각하면
도저히 잴수없는 부분이 된다. 사소한 내용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니까..
어쨌든 보통, 다독, 통독의 장점은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성경을 봄을 통해 성경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성경의 부분적 내용을 전체의 뜻과 어울리게 읽을수 있는
즉, 앞뒤가 맞지않는 해석..ㅡㅡ;을 하는 우를 피할수 있는 기본 전제가 된다는 의미에서 처음 성경을 접하는 경우엔 오히려 정독보다는 다독, 통독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독으로 보통 4~5독을 한 경우라면 정독은 꼭 필요한 것같다.
구체적인 말씀의 의미를 새기는 것...성경연구라는 의미에서의 정독은 너무 중요한것.
뭐..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지만...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다른 부분의 그냥 두더라도 꼭 유의해야할 점에 한가지 이야기 하고 싶어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 전도집회나 일요말씀가운데 등에서 주로 많이 접하게 되는 말씀등,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익숙한 말씀들의 경우 오히려 그 해석에 있어서...
우리가운데 이야기되어지는 해당 말씀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 때문에..그 본래의 의미와 뜻을 보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을 여러번 느끼게 된다.
즉, 이해하기 쉽게 말씀한 경우나, 허용되는 의역, 가능한 영해등을 한 경우가
여러번 말씀을 통해 이야기된 경우, 그러한 해석만 접하고 거기서 생각을 멈춤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석이 정상적인 내용을 감추는 색안경이 되어버려 전체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이해가 되어버리는 경우다.
말이 복잡한데 예를 하나 들면 간단할것같다.
누가복음 23장 31절 말씀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위의 말씀의 경우는 푸른 나무는 유대인, 마른 나무는 이방인, 이라는 해석이
조금은 고정되어 있는데..
실제 말씀의 문맥을 앞뒤로 읽어보고 기존에 형성된 관념없이 읽어보면
푸른 나무는 예수님을, 마른 나무는 유대인을 포함한..보통 인간, 죄인들을 말하는
것을 알수있다.
물론 이게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고 다 아는 사실이고
어느 목사님께서 이야기 해주신것 같기도한데...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중에는...그랬었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예는 생각외로 여러곳 된다.
이런 경우는 생각외로 중요하다. 말씀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 혹 말씀을 전하시는 분외의
다른 경로를 통해 자신이 오해를 벗었을 경우 기존의 해석방법으로
말씀을 전하신 분에 대한 불신이나, 오해가 생길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알게 모르게 교제와 교회,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에 근거한 무조건적인
신뢰조차 상하게 한다.
하고싶은 말은....셩경말씀을 읽는데 있어서 영적인 의미, 상징의 개인적 해석등을
하기 앞서...그 해당 구절의 기본적인,, 문자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고..
그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성경자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구절을 처음 대하는 듯 접근하는 자세...겸손과 통한다고 생각하는데...그런 자세가
필요한 것같다 는것..
말씀을 읽는 것이 좋지 않은 의미에서 습관화 된 듯하고..심상한 일일행사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는 것은...그런 마음 자세의 부족이 아닐까.
그러한 말씀앞에 무릎꿇음없는 말그대로 생각없는 태도에서...무슨 지혜를 깨달을수있을까..하는 반성을 해봤다.